17. 대서(大暑) [𝑷𝒍𝒂𝒚𝒍𝒊𝒔𝒕]

上
발끝에 걸린 슬리퍼가 움직이는 다리에 맞춰 흔들거린다. 가장 푸르게 파릇거려야 할 나뭇잎이 몇 개 떨어져 발 뒤로 흐릿하게 보인다. 가로등 불빛이 나무에 가려져 한밤중에도 그늘이 졌다. 나는 괜히 발끝을 그 그늘의 경계에서 왔다갔다 흔들었다. 몇 주간 우리의 밤을 설치게 하였던 열대야가 끝난 지 며칠이 지나서 연은 내게 산책하러 가자고 오래간만에 제안했다. 나는 창문을 열어 손을 뻗어 온도를 확인하고 그의 제안에 따라나섰다. 아직 습하고 움직이기에 더웠지만, 낮처럼 숨이 턱턱 막힐듯한 더위는 없었다. 위에 입은 티셔츠가 살에 눅눅하게 닿았고 얼굴은 마스크를 쓴 듯 조금 답답했다. 여름에만 느낄 수 있는 나무 냄새가(혹은 흙냄새일지도 모른다.) 온 공원에 널려있다. 옆을 보자 연은 온몸에 땀을 비가 오듯 쏟으며 집에서 나설 때 챙겨왔던 얼음물을 벌컥벌컥 마시고 있다.

“ 내가 그러게 뛰지 말라고 했잖아. ”

연은 물을 마시다 말고 살짝 눈을 돌려날 바라봤고 아무 대답 없이 물을 입에 쏟아넣었다. 입으로마저 들어가지 못한 물방울들이 연의 입 주위로 흘러 연의 옷을 적셨다. 하지만 이미 땀에 젖을 대로 젖어 조금 축축한 연의 티셔츠였기에 따로 신경 쓰지 않았다. 고개를 들어 물을 마시는 연의 목선과 목젖이 유난히 잘 보인다. 연은 입에 물을 가득 머금고 고개를 내리고 내 앞에 물병을 내밀었다. 나는 연의 손에 쥐어진 물병을 건네받았다. 얼음 물병을 오래 쥐고 있던 연의 손끝과 내 손끝이 닿았고 살짝 은 차가운 연의 손이 느껴졌다. 나는 1/4쯤 남은 물병의 물을 보고는 나보다 더 물을 마시고 싶어할 연을 위해 조금만 물을 마시고 다시 연에게 물병을 건넸다. 연은 물병을 다시 건네받고는 남은 물을 모두 마시고 큰 숨을 터트려 내쉬었다.

“ 이제야 살 것 같네. 조금 더 뛰었으면 아마 심장마비나 그런 비슷한 걸로 죽었을지도 몰라. ”
“ 그러게 왜 뛰었어? ”
“ 그냥 조금 답답해서 뛰고 싶었어. ”

연은 땀에 젖은 짧은 머리를 양손으로 쓸어넘겼고 큰 손으로 얼굴에 땀들을 닦아내며 대답했다. 연은 언제나 힘과 열정이 넘친다. 그는 이렇게 더운 여름에도 매주 친구들과 농구를 하러 나간다. 그때마다 나는 그의 얼굴이 타지 않게 선크림을 조금 덜어내 연의 손등에 짜준다. 연은 내가 선크림을 짜주지 않으면 귀찮음에 그냥 나갈 것이 뻔한 그런 평범한 남자애다. 연은 주말마다 침대보와 이불을 털어야 마음이 편하다며 침대 위에 이불을 덮고 누워있는 나를 굴려 침대보와 이불을 꺼내 간다. 그리곤 문밖에서 뭔가 터지는 소리가 한참이 들리고 나서 또다시 땀을 흘리며 돌아와 다시 나를 굴려 이불 속 침대보 위에 올려준다. 또, 가끔 연과 내기를 할 때가 있다. 연은 뭘 할 때마다 나와 딱밤 내기를 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때마다 가끔 져줄 법도 하지만 어떻게든 나를 이기기 위해 눈을 부릅뜨고 온 힘을 다한다. 가끔은 얘는 이게 뭐라고 이렇게 열심히 하는지, 내가 여자친구인데 한 번쯤은 져줄 수 있지 않은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럼에도 나는 연이 나를 이기고 세상을 다 가진 듯 소리치는 연의 모습이 좋아 내가 이길 수 있음에도 우매한 척 져줄 때가 있었다. 지고 나서 침울하고 억울해하는 연의 모습보다는 이쪽이 더 좋았다. 연은 마음이 약하기에 날 세 개 때리지 못하니 내가 지는 편이 더 우리 둘 모두에게 큰 행복을 가져다준다.

“ 나 한 번 더 뛰고 올까? ”
“ 왜 그렇게까지 하는데? ”
“ 음... ”

연은 잠시 눈을 하늘로 추켜올리고 그 이유를 고민했다.

“ 그냥... 살아있는 것 같아서? ”
“ 그러면 요 며칠 간은 죽어있는 것 같았어? ”
“ 그런 건 아닌데 확인을 하는 거지. 내가 살아있는 게 맞는지. 나 조금만 뛰다 올게. 쉬고 있어! ”

연은 내 대답도 듣지 않고 앉아있던 벤치에서 육상 선수처럼 땅에 손을 짚더니 힘차게 튀어 달려나갔다. 달리는 연의 뒷모습이 점점 내 시야에서 멀어지고 마지막 가로등을 기점으로 연의 모습이 사라졌다. 나는 연이 앉아있던 벤치에 덩그러니 놓인 연의 휴대전화를 바라봤고 한숨을 내쉬고 고개를 저었다.

“ 나는 그럼 여기서 가만히 너를 기다리라고? ”

나는 연의 휴대전화를 챙겨 주머니에 넣었다. 연은 나처럼 가만히 집에 있으면 살아있다고 느끼지 않는구나. 나는 곰곰이 연의 말을 곱씹으며 되뇌었다. 살아있는 것 같다는 연의 말이 몇 번이나 머릿속에 맴돌았다.




00:00 New Plant - The Volunteers (더 발룬티어스)
05:02 리얼러브 (feat. 청하) - 신해경
10:25 보존 - Room306
14:38 너는 내가 (권월과 함께) - 생각의 여름
17:23 도래 - 김혼
21:48 백년해로 - 선우정아
25:58 여름밤에 우리 (feat. wave to earth) - 전진희
30:39 졸업 - 김여명 (KIM YEO MYUNG)
33:55 후일담 - 곽태풍
(https://soundcloud.com/danielswiminthecloude/6emyjiqtapdg)
38:55 별것 - Woshi
(https://soundcloud.com/woshi_official/osgklneujg6d?utm_source=clipboard&utm_medium=text&utm_campaign=social_sharing)



해당 영상은 수익을 창출하지 않습니다.
음악 창작자에게 광고 수익이 발생하며 해당 영상에 사용된
음악의 저작권자께서 요청으로 작업물 사용에 이의를 제기하시면
언제든 조치하겠습니다.



@iamyourseptember
plsletmegohome@gmail.com
썸네일 : [MV] Room306 - 보존 (PRESERVE) / Official Music Video
(https://www.youtube.com/watch?v=t0vp-vE1Xjg)